2015년 10월 15일 목요일

국정 교과서 논란 2탄 - 레이디 가카의 큰 그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대해 짤막한 변을 남긴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간 뉴스, 블로그, SNS에서 쉴새없이 쏟아져 나온 온갖 격앙된 반응을 보고 있자니 엊그제가 아주 먼 옛날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결국 우리 정부는 예상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기어코 한국사를 '국사'로 되돌리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한국의 사학계는 발칵 뒤집혔고 교수들은 집단으로 항의성명을 내고 국정 교과서 집필거부 움직임을 보이는 등 사태는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재 10월 15일 기준, 공식적으로 국정 교과서 집필을 거부한 교수의 수는 이미 천여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중 대부분이 오늘 하루 사이에 모였다는 점이 경이롭다. 여느 학자가 그렇듯이 사학자들 역시 남의 연구성과를 물어뜯는데 도가 튼, '파이터' 기질 충만한 이들 아니던가. 그랬던 그들이 하루만에 고대사, 중세사, 근현대사 등 전공분야를 막론하고 하나의 기치 아래 운집하는 기적을 목도하니 국민통합을 추구하는 레이디 가카의 큰 그림에 경탄을 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대붕의 뜻을 모르고 지껄이는 참새 무리가 많아 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오늘 인터넷에서 본 글들만 해도 그렇다. 한 역사학자가 말하길, "훌륭한 지도자는 역사를 바꾸고 저열한 지도자는 역사책을 바꾼다"고 한다. 무지의 소치가 따로 없다. 레이디 가카는 역사책을 바꿈으로써 역사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역사가 레이디 가카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레이디 가카와 그 가족사는 최소한 임기를 마치는 1년 동안은 교과서에 남아 수많은 이들에게 큰 웃음, 빅재미를 선사하고 마지막엔 어느 쓰레기 처리장 한켠에서 따뜻한 온실가스로 화하여 조용히 생을 마감할 것이다. 실용적인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레이디 가카의 가족사가 대폭 증편된 교과서는 그 두툼한 무게로 컵라면 뚜껑을 묵직하게 누를 것이며 냄비 받침판으로도 그 효용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혜택을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공짜로 누린다고 생각을 해보라! 학생들이 쥐꼬리만한 용돈을 누름판과 받침판 사는 데 낭비할 일이 없으니 천문학적인 돈까지 아낄 수 있다. 그렇다! 레이디 가카께서는 역사를 창조함으로써 마침내 경제마저 창조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계신 것이다.




14일, 새누리당의 유력 대선후보로 꼽히는 김무성 대표는 국회에서 "학부모들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는 식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아이들 머리속에 어떤 것이 들어가서 자리잡을지에는 관심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작금의 역사 교육 행태에 우려를 표했다. 일각에서는 이 발언을 야당의 무상급식 정책을 비꼬면서 동시에 김무성 대표 본인의 편협한 역사관을 드러내는 몰상식한 발언이라며 비판했지만 이 역시 옹졸한 인간들의 아우성에 불과하다. 멀쩡한 서울 시장 한명의 정치인생을 사단낸 무상급식 이슈를 김 대표 같이 노회한 정객이 이제와서 뜬금없이 꺼내들리가 없지 않은가. 그보다는 10년 전 레이디 가카께서 사학법 개정을 저지하신 덕분에 고등학교 학생들의 급식비를 마음껏 횡령할 수 있었던 서울의 한 사학재단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김 대표가 학부모들의 교육에 신경 쓰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억하자. 새누리당은 게임 셧다운제로 한국의 학생들을 게임의 사악한 마수로부터 구해냈고 창작물 속 청소년을 성폭행한 범죄자를 실제 성폭행범보다 더 높은 형량으로 응징하는 아청법을 통과시킨 혁신적인 정당이 아니던가. 그런 당의 대표가 아이들의 교육을 걱정하지 않을리 있겠는가.




새누리당이 같은 날 길거리에 내건 플래카드는 더욱 아프게 의표를 찌른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비단 학생들뿐이랴.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한국의 근현대사 역시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복선은 교과서 곳곳에 교묘하게 숨어있다. 가령 한국 전쟁 이후, 우리의 국부 이승만 대통령이 종국에 독재자로 매도되는 모습은 보천보 전투로 영웅이 된 김일성이 인류 최악의 독재자로 전락하는 모습과 기묘한 중주를 이룬다. 5.16 군사 혁명이라는 구국의 결단 끝에 경무대로 영전한 박정희 대통령은 어떤가?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아들 김정일에게 자리를 물려주려고 대규모 숙청이라는 '구국의 결단'을 내린 김일성을 겹쳐보고 있지는 않았나? 1972년 남북간 접촉이 성사된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시대를 열고 동시에 김일성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를 강화한 대목에선 운명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흉탄 두발에 서거하는 부분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죄책감은 커녕 쾌감을 느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적화(赤化)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이제 우리는 진실을 안다. 우리는 북한이 구축한 매트릭스, 아니 북트릭스 속에서 생각이 거세된 채 하루하루를 똥만드는 기계로 살아온 것이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주자! 환한 웃음을 주자! 따뜻한 불쏘시개를 주자!

<미들어스: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Middle-earth : Shadow of Mordor, 2014)> 리뷰




예, 알아요. 버튼만 누르면 자동적으로 콤보가 이어지는 전투는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에서, 벽과 지붕을 자유로이 오르내리는 조작 방식은 <어쌔신 크리드>에서, 그리고 온갖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적들을 몰래 제압하는 시스템은 양쪽 모두에서 배낀 거라는 사실쯤은요. 근데 어쩌겠어요. 끝내주게 재밌는걸!


타산지석

<미들어스: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이하 '미들어스')>는 그리 독창적인 게임은 아닙니다. 초반부 튜토리얼만 봐도 이 게임이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도 <미들어스>는 훌륭한 선배들을 롤모델로 삼았고 그들의 성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모범생 후배였습니다.


<미들어스>는 액션 게임입니다. 그리고 2010년대 가장 성공한 두 액션 게임 프랜차이즈의 유산을 그대로 가져왔죠. 바로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의 프리플로우 컴뱃(free-flow combat) 시스템과 <어쌔신 크리드>의 파쿠르 조작(parcours movement) 시스템입니다.




프리플로우 컴뱃은 다수의 적을 상대로 플레이어가 물 흐르듯 부드러운 전투를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에서는 플레이어가 공격 버튼을 연타하면 조작 캐릭터는 화려한 움직임으로 적을 공격, 콤보를 올리고 그렇게 일정수의 콤보가 누적되면 플레이어는 강력한 특수 기술을 사용해 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콤보는 도중에 적의 공격을 받으면 중단되기 때문에 위험할 땐 반격과 회피를 해야만 합니다. 또 몇몇 적은 특정한 기술로만 공격할 수 있으므로 적당한 순간에 적당한 기술을 섞는 순발력도 중요하죠.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버튼을 눌러 흐름을 이어야 한다는 점은 흡사 리듬 게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파쿠르(parcours)란 원래 프랑스어로 '길'을 뜻하는데 오늘날에는 둔턱이나 벽, 철봉 같은 장애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목적지까지 빠르게 도달하는 스포츠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군중으로 가득찬 도심 속에서 목표를 암살해야 하는 <어쌔신 크리드>의 주인공은 높다란 건물과 외줄, 비좁은 난간 위에서 파쿠르를 선보이는데 조작 방식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플레이어는 그저 '달리기' 버튼을 누른 채 장애물에 돌진하면 됩니다. 앞에 벽이 있나요? 벽으로 달려가세요! 지붕과 지붕 사이를 건너고 싶다고요? 그냥 달려요! 그러면 캐릭터가 알아서 벽을 타고 지붕을 넘어줄 겁니다. 고작 버튼 하나만으로요. 그럼 플레이어는 적당한 곳에 숨어 적을 어떻게 덮칠지 생각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미들어스>의 개발사, 모노리스(Monolith)는 두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전투에서 빠르게 콤보를 이으려면 탁 트인 벌판에 때릴 수 있는 적들의 수가 충분히 많아야 합니다. 반대로 잠입과 암살은 적들이 군데군데 분산되어 있는 가운데 모습을 감출 수 있는 다양한 지형지물과 장치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두 시스템을 모두 도입하려면 밸런스 문제까지 대두됩니다. 전투가 지나치게 쉬우면 플레이어가 귀찮게 숨어다닐 이유가 없고 은신의 이점이 전투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면 아무도 정공법을 택하지 않을 테니까요. 참 골치아픈 딜레마입니다.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다.

모노리스가 내놓은 해법은 단순했지만 무척 정교한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오픈 월드에 거대한 평야, 복잡한 구조의 요새, 몸을 숨길 수 있는 수풀과 각종 구조물들을 모두 망라한 것입니다. 그리고 적들은 기본적으로는 무리를 지어 기습에 대비하게 하되 시야가 닿지 않는 건물 지붕과 난간 등지에는 적의 궁수를 한명씩만 배치함으로써 잠입을 용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걸로 플레이어들에게 선택권이 생겼음은 물론, 프리플로우 컴뱃과 파쿠르 조작의 이점까지 모두 챙길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뿐이었다면 <미들어스>는 '그나마 괜찮은' 아류작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겁니다. <미들어스>는 타인의 성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기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먼저 <미들어스>에선 활을 이용하여 상상을 초월한 온갖 플레이를 펼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멀리서 적을 소리 없이 죽이는 건 기본이요, 칼싸움 중에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레골라스마냥(!) 활로 적을 공격해 콤보를 쌓는 것은 물론, 도망치는 적의 발을 쏴 멈추게 하거나 심지어는 멀리 떨어진 적에게 자기자신을 쏘아보내서(?!) 기습할 수도 있습니다. 또 활로 적을 조준하면 플레이어의 '포커스(focus)' 게이지가 소모되며 시간이 느려지는데 덕분에 플레이어는 정확하게 적의 원하는 부위-아마도 대부분 머리-를 노릴 수 있습니다.




적들을 몰래 해치우는 방법도 여러가지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은신 자세를 취한 채 접근하여 적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배후나 위아래-에서 단검으로 '쓱싹'하거나 멀리서 활로 저격하는 것이지만 주변의 오브젝트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거나 특수한 스킬을 사용하면 보다 재미난 상황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목표가 무리 한가운데 있다면 근처에 매달린 파리집을 떨어뜨려 적들을 흩어놓는 게 좋습니다. 아니면 제가 선호하는 '주변의 맹수를 유인해서 무리 전체를 밥으로 던져주기' 작전도 있습니다. 파리도, 맹수도 없다면 적의 음료에 독을 타서 무리에 내분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적을 세뇌하는 기술을 배웠다면 아예 군대를 만들어 상대를 쓸어버리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액션 게임에서 정치하기, 네메시스 시스템.

<미들어스>는 기존의 시스템을 개량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제작사 모노리스는 <미들어스>에 네메시스 시스템(nemesis system)을 도입하여 다른 아류작들과 확실히 선을 그었습니다. <미들어스>의 적들은 모두 계급이 있습니다. 계급은 일반병-대장-베테랑 대장-엘리트 대장-족장 순으로 올라가는데 무수히 많은 일반병들과 달리 대장급 이상의 적들은 최상위 계급, 족장 5명과 휘하 15명의 대장까지 총 20명뿐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능력치는 일반병들을 크게 웃돌며 저마다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대장은 일반 공격이 먹히지 않고 어떤 대장은 싸움에서 절대 후퇴하지 않으며 어떤 대장은 무시무시한 한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대장급 적들은 약점 역시 가지고 있기에 정보만 있다면 이들을 공략할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작중에 정보를 알고 있는 적이나 죄수를 심문하거나 곳곳에서 발견되는 기밀 문서를 읽으면 원하는 대장의 특성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들어스>의 대장들은 단순한 경험치 셔틀이 아닙니다. 20명의 대장들은 비열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라 출세를 위해서라면 동족의 등에 칼을 꽂는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비슷한 계급끼리 더 높은 직위를 두고 다투는 건 예사이고 최상위 계급조차 항상 부하의 배신에 노출되어 있죠. 플레이어들은 네메시스 시스템 속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암투에 개입하여 전황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습니다. 혼자 상대하기 껄끄러웠던 대장을 다른 대장의 손으로 해치운다거나 내가 세뇌시킨 대장을 족장의 자리에 앉히는 일따위로 말이죠. 하지만 네메시스는 항상 당신의 편이 아닙니다. 플레이어가 대장의 손에 죽는다면 그 대장은 더 높은 레벨과 계급을 얻게 되어 다음 전투에서 곤욕을 치르게 될 겁니다. 심지어 플레이어를 죽인 일반병조차 승진을 합니다. <미들어스>의 세계에서 죽음은 의미가 있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그대로 옮기다. 단, 스토리 빼고.

이제 조금 불편한 부분으로 넘어가보죠. 게임의 스토리입니다. <미들어스>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미들어스>의 배경은 <반지의 제왕>의 세계, 구체적으로는 가운데땅(Middle-earth)입니다. 악의 군주, 사우론은 인간과 엘프 연합군에 의해 쓰러진 이후 암암리에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결국 모르도르의 잔존 오크들을 규합해 곤도르 왕국을 공격합니다. 이 때 곤도르를 지키던 파수꾼 탈리온은 사우론의 수하인 검은 손, 검은 탑, 검은 방패에게 눈 앞에서 가족을 잃는 치욕을 당하고 자신도 목숨을 잃을 뻔하나 순간 고대 엘프의 영혼이 자신에게 빙의한 덕분에 죽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엘프는 탈리온에게 가족의 복수를 도와주는 대가로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줄 것을 요구하고 탈리온은 이에 응하면서 <미들어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톨키니스트가 아닌 입장에서 <미들어스>가 얼마나 소설 <반지의 제왕>에 충실했는지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지만 보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영화 <반지의 제왕>이 게임에 남긴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들어스>의 세계는 영화의 축소판입니다. 북적거리는 요새와 쇠락한 고대 유적, 흉측하지만 친숙한 오크들의 모습은 영화와 판박이입니다. 게임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들조차 그 외견과 행동이 영화판의 등장인물들과 비교해도 위화감이 들지 않습니다. 영화판에 한정한다면 <미들어스>는 <반지의 제왕>의 '분위기'를 충실히 구현한 작품입니다.


유감스러운 부분은 이 게임이 <반지의 제왕>의 '드라마'를 한편의 몰개성한 복수극으로 퇴화시켰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인 탈리온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굴곡도 없이 복수만을 향해 전진할 뿐입니다. 간달프의 재치도, 아라곤의 근엄함도, 보로미르의 고뇌도 이 3류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에게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반지의 제왕> 캐릭터들조차 플롯 장치로만 사용되고 금세 퇴장하는 지경에 이르면 실소가 나옵니다.


<미들어스>의 심심한 미션 구성과 연출 역시 이야기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들입니다. 탄탄한 기본기와 뛰어난 자유도를 갖춘 액션 게임답지 않게 메인 미션과 서브 미션은 일방적인 잠입/암살/전투의 지리한 반복이라 어떤 사건이 펼쳐져도 별 인상이 남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한창 흥미진진한 가운데 갑자기 컷신이 나와 맥을 끊어대는 구시대적 연출도 문제입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컷신의 주인공에 어느 플레이어가 일체감을 느낄까요?


그리고 위 문제가 총집합한 마지막 미션 최종전투는 <미들어스> 최악의 오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잦은 컷씬, 뜬금없는 반전, 허무한 클라이막스 그리고 의미없는 결말까지... 앞서 지적한 모든 결점을 단 5분 남짓한 순간에 농축시킨, 핵폐기급 엔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게임팬으로서 

하지만 <반지의 제왕>이 아닌 게임팬으로서 <미들어스>는 분명 완성된 작품입니다.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의 유려한 전투와 <어쌔신 크리드>의 파쿠르를 제대로 소화해내어 '검증된' 재미를 보장한 것은 물론, <미들어스> AI의 정점인 네메시스 시스템을 도입하여 게임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입니다. 비록 <미들어스>는 외전으로서 커다란 누를 남겼지만 게임으로선 커다란 성공을 남겼습니다.




[평점 : 8/10]

2015년 10월 10일 토요일

시간을 달리는 한국사, 국정 교과서의 귀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 2015년 10월 7일, 드디어 새누리당은 한국사 교과서를 기존의 검정체제에서 국가가 발행하는 단일 교과서로 전환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말이 '잠정'이고 아직 대통령의 결정이 남아있다지만 사실상 밀어붙이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아직 최종 결정된 것은 없으면 단일 교과서로 갈지, 검정강화로 갈지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아직 확정된 사안이 아님을 강조했다. 물론 이는 표정관리에 불과했다. '잠정' 결정이 이루어진지 고작 이틀 뒤인 10월 9일,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일보와의 통화를 통해 내년 10월까지 새 국정 교과서의 집필과 심의를 완료할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 깨알 같이 "검인정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는 사족이 붙었지만 아무리 눈치없는 독자 제현이라도 이 말의 의미'없음'에 대해선 굳이 해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사 국정화의 역사는 길다. 1972년 10월 17일, 유신체제를 통해 영도적 대통령 체제를 구축한 박정희 대통령은 종래의 11종이었던 역사 교과서를 하나로 통폐합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에 따라 1974년 1학기부터 유신 체제를 옹호하고 반공을 국시로 삼으며 정권의 경제정책을 홍보하는 내용이 골자가 된 '국사' 교과서가 문교부에서 발간되기 시작했다. 1982년, 이번에는 군사 반란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5공화국을 미화하고 각지의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는 내용을 추가하여 교과서를 개정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군사 정권의 왜곡은 대부분 시정되었으나 참여정부를 지날 때까지 국사 교과서는 여전히 교육부에서 발행되었다. 2010년이 되어서야 중학교 국사가 검정 체제로 전환되었고 2011년엔 드디어 고등학교 한국사마저 그 뒤를 따랐다. 이로써 '국사'는 무려 37년이 지난 끝에서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랬어야만 했다.




헤겔은 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마르크스는 덧붙였다. "첫번째는 희극으로, 두번째는 비극으로." 2013년, 한 출판사에서 집필한 한국사 고등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해서 세간이 들썩일 때만 하더라도 상황은 싸구려 희극처럼 보였다.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겠다고 장담하던 교과서는 실로 가관이었다. 신뢰도가 의심스러워 대학교 학부생조차 꺼리는 출처를 통해 자료를 당당히 긁어모은 건 예사요, 이미 확인된 사실 관계마저 틀린 부분이 수백 군데나 드러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교육부가 출판사에 재수정을 요구했으나 그러고도 남은 오류가 수십 군데에 달했다니 그 심각성을 알만 하다. 그럼에도 한국사 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고 굳는 사람들은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고 출판사를 옹호했다. 결국 이 희대의 교과서는 심연 속에 묻히기는 커녕 논란의 중심에 서서 한동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호사를 누렸고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채택을 포기하는 와중에 기어코 한 고등학교의 간택을 받는 기염까지 토하고 만다. 참고로 학교의 이사장이 대통령 각하의 동생분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다.




그러나 2년 전의 희극이 오늘의 비극을 알리는 전주곡이었음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실 교과서의 무오성을 성경의 그것만큼이나 신봉했던 이들은 이내 새로운 희생양을 찾았다. 얄궂게도 교과서 검정 제도였다. 그들이 숭앙하던 교과서를 처음 세상에 선보였던 바로 그 법말이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었고 고전 비극의 막이 올랐다. 이제 비극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려하고 있다. 학교가 교과서를 선택했던 검인정 체제와 달리 국정 교과서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만약 2013년의 희극이 국사편찬위원회가 2017년에 편찬할 '국사'에서 재발한다면 전국의 학생들이 저질 코미디의 관객이 되는 것이다.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인가! 승자인 지금 역사를 하루 빨리 남기고 싶은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누구나 세탁하고 싶은 '흑역사'는 하나쯤 가지고 있는 법이고 존경하는 아버지의 과오를 인정하기 싫은 자식의 효성이란 것도 있다. 하지만 승리는 영원하지 않다. 배후에 계신 대통령 가카나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님은 돌이켜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아버님께서 '지금' 어떻게 기억되고 계신지를.

2015년 10월 8일 목요일

<샤를로트(2015)> 리뷰




2015 최고의 재앙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요? 아니, 애초에 생각이란 걸 한 걸까요?

<샤를로트>는 단연 2015년 최악의 애니메이션 시리즈입니다.

개연성따윈 안중에도 없는 엉망진창 스토리, 단 1밀리그램의 호감도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 유치하다 못해 어처구니 없는 대사,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라이브 음악씬까지. 이런 총체적 난국 속에서 전개의 탄탄함이나 캐릭터의 매력을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일까요.

혹여 <샤를로트>의 기획 의도가 시청자들의 지성을 시험하는 것이었다면 이 애니는 자신의 소임을 훌륭하게 완수했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극도의 마조히스트거나 싫어하는 상대와 같이 볼 것이 아니라면 <샤를로트>는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시작만.

<샤를로트>는 비록 뻔하지만 그럴싸한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주인공은 상대의 몸을 5초 동안 '강탈'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명문 고교생 오토사카 유우(우치야마 코우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초능력으로 상대를 조종하는 속물근성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나 의문의 소녀 토모리 나오(사쿠라 아야네)에게 자신이 초능력을 사용해 시험지를 컨닝하는 장면이 찍히는 바람에 퇴학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나오 역시 투명화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였고 궁지에 몰린 유우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줍니다.

자신들뿐 아니라 세상에는 더 많은 초능력자들이 숨어있고 그 능력은 청소년기에만 발현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나오는 유우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합니다.

첫째는 컨닝을 폭로당하느니 차라리 초능력자들만 모인 호시노우미 고등학교로 전학오라는 것. 그리고 둘째는 자신과 힘을 합쳐 숨어있는 초능력자들을 찾아내 보호하자는 것.

얼핏 여기까지만 보면 <샤를로트>를 초능력자들의 몰개성한 학원 드라마 정도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샤를로트>는 그렇게 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보였습니다.

한 각본가가 허튼 야망에 부풀어 이야기를 산으로, 하늘로, 우주로 끌고 가지만 않았더라면, 감독이 말도 안돼는 각본가의 망상에 제대로 제동을 걸었더라면, 스폰서들이 이 말도 안되는 기획에 우려를 표했더라면 <샤를로트>는 그저 그런 작품으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이 물건은 마지막 순간까지 각본가의 의도대로 흘러가 시청자들의 뇌리에 씻을 수 없는 낙인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각본의 실패 - 성의없는 초반, 어이없는 후반.

그럼 어디부터 어디까지 잘못됐을까요? 시작을 빼고 전부 잘못됐습니다.

<샤를로트>는 방영이 시작된 이후 5화까지 다음과 같은 원패턴 전개로 흘러갑니다.

먼저, 유우와 나오 일행이 숨어있는 초능력자를 찾아가 능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설득합니다. 당연히 초능력자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습니다.

결국 유우와 나오 일행이 실력행사에 들어가고 나서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순히 요구에 따르는 초능력자. 마치 세상이 끝난 듯 저항할 생각은 꿈도 못 꿉니다.

그리고 주인공 유우는 집에 돌아와서 여느 때처럼 여동생의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게으름의 결정체요, 크리에이터로서 자존심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매너리즘이라는 말조차 과분합니다. 무려 시리즈의 절반에 가까운 에피소드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사건을 진행할 엄두조차 못낸 것입니다.

초반의 부실한 스토리라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후반에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편의주의적인 이야기가 반복되는 동안 새로운 사건으로 이어지는 복선이 충분히 깔리지 못했고 이것이 시리즈를 더욱 궁지로 몰아버린 것입니다.

5화까지가 게으름의 절정이었다면 6화 이후는 그야말로 비상식의 절정이었습니다.

6화, 뜬금없이 중대한 사건이 터져버립니다.
7화, 뜬금없이 주인공이 폭주합니다.
8화, 뜬금없이 라이브씬이 나옵니다.
9화, 뜬금없이 장르가 스릴러풍 SF로 바뀝니다.
10화, 뜬금없이 말도 안되는 설정이 튀어 나옵니다.
11화, 뜬금없이 장르가 범죄 느와르로 바뀝니다.
12화, 뜬금없이 아침 드라마를 찍습니다.
13화, 뜬금없이 이능력 배틀물로 바뀝니다. 그리고 뜬금없는 엔딩.

결국 <샤를로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표류하다 심해로 가라앉은 셈입니다.


캐릭터의 실패 - 비호감의 화신으로 전락한 캐릭터

먼저 분명히 짚고 넘어가죠. 성우들의 연기는 훌륭합니다.

<샤를로트>에 출연한 성우 거의 모두가 캐릭터 이미지에 맞는 목소리, 감정연기를 마지막 순간까지 유지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부분입니다. 특히 토모리 나오를 맡은 사쿠라 아야네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자신의 가치를 톡톡히 입증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 메이킹은 성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이야기든 캐릭터를 이루는 골격은 '대사'와 '행동'이고 이게 없는 캐릭터는 한철 계절이 지나면 시드는 잡초나 다를 바 없는 존재입니다.

<샤를로트>의 캐릭터들이 바로 그 잡초입니다. 성우들이 아무리 분발을 해도 <샤를로트>의 캐릭터에겐 어떤 매력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뿐이면 모르겠습니다. 시청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시추에이션과 손발이 오그라드는 유치한 대사가 분단위로 쏟아져 나오는 후반부에 이르면 차라리 성우들의 출중한 연기마저 원망스러울 지경이니까요.


리벤지 매치 그리고...

<샤를로트>의 각본을 쓴 마에다 준은 과거 <카논>, <에어>, <클라나드> 등 양질의 어드벤처 게임 시나리오를 제작한, 소위 '업계'의 전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P.A.WORKS와 협력해서 쓴 애니메이션 데뷔작 <Angel Beats!(앤젤비츠)>는 뛰어난 판매량을 기록한 것과는 별개로 스토리텔링의 기초조차 잡혀있지 않다는 혹평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5년 뒤 그는 "<앤젤비츠!>를 비웃던 사람들이 찍소리도 못하게 해주겠다"며 다시 돌아왔습니다.

과연 마에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앤젤비츠!>를 보고 <샤를로트>를 본다면 누구라도 말문이 막혔을테니까요.


[평점 : 2/10]

<마션(2015)> 리뷰



한 탐사원의 화성 조난기

가까운 미래, 화성을 탐사하던 NASA의 아레스3 탐사대는 급작스러운 모래폭풍에 휩쓸리고 그 와중에 탐사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행방불명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결국 탐사대는 마크를 화성에 놔둔 채 탈출하고 NASA는 그의 죽음을 공표하는데...

당연하게도 마크는 살아있었다. 허나 그에게 남겨진 건 31일 동안 작동가능한 베이스 캠프와 수주일치 비상식량 뿐...

과연 마크는 화성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압도적인 비주얼, 세밀한 디테일

화성은 어떤 별인가? 푸른 바다와 울창한 녹림이 표면의 대부분을 덮는 생명의 별, 지구와 달리 화성(火星)은 그 이름대로 붉게 타는 색깔의 산화철 먼지가 뒤덮고 있다. 표면적은 지구의 1/4, 부피는 지구의 1/10 밖에 안되는 이 왜소한 행성은 이산화탄소가 대기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산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화성은 죽음의 별이다. 황량한 모래먼지의 사막이다. 영적인 의미에서 지옥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상의 그 누구도 생전에 발을 디디진 못했으니 말이다.

영상미학자로 정평이 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눈에도 화성은 그렇게 비친 듯 하다. <마션>에 등장하는 화성은 분명 죽음이 지배하는 별이다. 타오르는 태양 아래에는 붉은 황야만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지옥. 하지만 그곳은 아름다운 지옥이다. 생명의 흔적조차 없이 깨끗한 무(無)의 공간은 지구의 어느 오지에서 볼 수 있었던가? 스콧 감독이 그려낸 적황빛 양지와 검은 음지가 선명하게 대비되는 배경은 그 '치명적인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 바깥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이 <마션>은 화성밖 우주비행사들의 작업 환경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물론 중력이 지배하는 지상에서 무중력 우주의 모습를 찍어야 하는 딜레마가 몇몇 '티 나는' 장면에서 엿보이지만 <마션>의 세밀함은 감히 <인터스텔라>의 그것과 비견할만하다.

각종 우주복과 탐사 장치를 직접 제작해서 조달한 것은 그렇다 치자. 실제와 같이 작동하는 우주정거장 모형과 행성 탐사기지 세트장은 대작 공상과학 영화이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실존하는 화성 탐사정을 그대로 본딴 소품이 살아 움직이는 장면에까지 이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독하다. 정말로 독하다. 그 치밀함에 전율을 느낀다.

영화의 미술팀과 소품팀, 고증팀에 박수를 보낸다. 스크린 밖에서 가장 빛나던 이들이었다.


흥미로운 설정, 그러나 공식에 충실한 서사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가자. 이 화성판 <로빈슨 크루소>, <캐스트 어웨이>, <그래비티>는 선배들과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시놉시스를 읽고 처음으로 든 생각이다. 극지에서 조난당한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는 고대 신화부터 현대의 재난영화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각색이 이루어진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플롯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기발한 재치와 강인한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

<마션>은 화성이라는 비교적 생소한 장소에서 출발한다. 좋다. 외부의 도움에 거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스스로의 힘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선배들에 비해 <마션>의 마크 와트니에게는 NASA가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다. NASA의 괴짜들이 머리를 맞대고 온갖 기발한 구출계획을 만들어내는 장면에선 소소한 웃음이 나온다. 좋다.

하지만 아쉽다. 마크 와트니의 행보는 선배들이 걸어온 길을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화성은 점점 마크를 죄어갈 것이다. 척박한 기후 앞에 식량, 산소, 전기 그 무엇도 충분하지 않다. 구조계획도 순조롭지만은 않다. 그러나 천운은 분명히 따를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더 큰 위기가 닥칠 것이다. 마크의 운명은 과연? 해답은 영화관에서.


만족과 실망의 공존

재난 영화로서 <마션>은 관객의 기대에 멋지게 부응하는 작품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미술센스는 화성을 <반지의 제왕>의 모르도르와 같이 죽음과 미가 공존하는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세트장과 소품의 뛰어난 디테일에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맷 데이먼은 숨소리와 표정만으로도 화성 한가운데 고립된 인간의 고통을 마치 내 고통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마션>은 분명 대작 재난 영화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달하는 재미가 장르의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 아쉬움이 크다.


[평점 : 7/10]

2015년 10월 7일 수요일

출발

잉여로운나날입니다.
여긴 제 잉여로운 블로그고요.

평소에 관심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 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제가 본 영화, 제가 플레이한 게임, 제가 읽은 에 지극히 주관적인 논평을 달거나 세간에서 화제가 되는 뉴스나 제 일상사를 소심하게 끄적거리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여느 블로그가 모두 그렇듯 여긴 여러분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제 졸문에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시거나 저와는 다른 생각을 한줄 댓글로 남기시는 일만으로도 제게는 큰 기쁨이 됩니다.

단, 어떤 글을 올리시든 화면 건너편에 있는 사람도 일단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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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잉여로운나날의 잉여로운 나날'에 잘 오셨습니다.
느긋하게 즐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