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8일 목요일

<샤를로트(2015)> 리뷰




2015 최고의 재앙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요? 아니, 애초에 생각이란 걸 한 걸까요?

<샤를로트>는 단연 2015년 최악의 애니메이션 시리즈입니다.

개연성따윈 안중에도 없는 엉망진창 스토리, 단 1밀리그램의 호감도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 유치하다 못해 어처구니 없는 대사,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라이브 음악씬까지. 이런 총체적 난국 속에서 전개의 탄탄함이나 캐릭터의 매력을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일까요.

혹여 <샤를로트>의 기획 의도가 시청자들의 지성을 시험하는 것이었다면 이 애니는 자신의 소임을 훌륭하게 완수했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극도의 마조히스트거나 싫어하는 상대와 같이 볼 것이 아니라면 <샤를로트>는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시작만.

<샤를로트>는 비록 뻔하지만 그럴싸한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주인공은 상대의 몸을 5초 동안 '강탈'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명문 고교생 오토사카 유우(우치야마 코우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초능력으로 상대를 조종하는 속물근성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나 의문의 소녀 토모리 나오(사쿠라 아야네)에게 자신이 초능력을 사용해 시험지를 컨닝하는 장면이 찍히는 바람에 퇴학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나오 역시 투명화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였고 궁지에 몰린 유우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줍니다.

자신들뿐 아니라 세상에는 더 많은 초능력자들이 숨어있고 그 능력은 청소년기에만 발현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나오는 유우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합니다.

첫째는 컨닝을 폭로당하느니 차라리 초능력자들만 모인 호시노우미 고등학교로 전학오라는 것. 그리고 둘째는 자신과 힘을 합쳐 숨어있는 초능력자들을 찾아내 보호하자는 것.

얼핏 여기까지만 보면 <샤를로트>를 초능력자들의 몰개성한 학원 드라마 정도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샤를로트>는 그렇게 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보였습니다.

한 각본가가 허튼 야망에 부풀어 이야기를 산으로, 하늘로, 우주로 끌고 가지만 않았더라면, 감독이 말도 안돼는 각본가의 망상에 제대로 제동을 걸었더라면, 스폰서들이 이 말도 안되는 기획에 우려를 표했더라면 <샤를로트>는 그저 그런 작품으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이 물건은 마지막 순간까지 각본가의 의도대로 흘러가 시청자들의 뇌리에 씻을 수 없는 낙인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각본의 실패 - 성의없는 초반, 어이없는 후반.

그럼 어디부터 어디까지 잘못됐을까요? 시작을 빼고 전부 잘못됐습니다.

<샤를로트>는 방영이 시작된 이후 5화까지 다음과 같은 원패턴 전개로 흘러갑니다.

먼저, 유우와 나오 일행이 숨어있는 초능력자를 찾아가 능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설득합니다. 당연히 초능력자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습니다.

결국 유우와 나오 일행이 실력행사에 들어가고 나서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순히 요구에 따르는 초능력자. 마치 세상이 끝난 듯 저항할 생각은 꿈도 못 꿉니다.

그리고 주인공 유우는 집에 돌아와서 여느 때처럼 여동생의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게으름의 결정체요, 크리에이터로서 자존심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매너리즘이라는 말조차 과분합니다. 무려 시리즈의 절반에 가까운 에피소드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사건을 진행할 엄두조차 못낸 것입니다.

초반의 부실한 스토리라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후반에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편의주의적인 이야기가 반복되는 동안 새로운 사건으로 이어지는 복선이 충분히 깔리지 못했고 이것이 시리즈를 더욱 궁지로 몰아버린 것입니다.

5화까지가 게으름의 절정이었다면 6화 이후는 그야말로 비상식의 절정이었습니다.

6화, 뜬금없이 중대한 사건이 터져버립니다.
7화, 뜬금없이 주인공이 폭주합니다.
8화, 뜬금없이 라이브씬이 나옵니다.
9화, 뜬금없이 장르가 스릴러풍 SF로 바뀝니다.
10화, 뜬금없이 말도 안되는 설정이 튀어 나옵니다.
11화, 뜬금없이 장르가 범죄 느와르로 바뀝니다.
12화, 뜬금없이 아침 드라마를 찍습니다.
13화, 뜬금없이 이능력 배틀물로 바뀝니다. 그리고 뜬금없는 엔딩.

결국 <샤를로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표류하다 심해로 가라앉은 셈입니다.


캐릭터의 실패 - 비호감의 화신으로 전락한 캐릭터

먼저 분명히 짚고 넘어가죠. 성우들의 연기는 훌륭합니다.

<샤를로트>에 출연한 성우 거의 모두가 캐릭터 이미지에 맞는 목소리, 감정연기를 마지막 순간까지 유지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부분입니다. 특히 토모리 나오를 맡은 사쿠라 아야네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자신의 가치를 톡톡히 입증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 메이킹은 성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이야기든 캐릭터를 이루는 골격은 '대사'와 '행동'이고 이게 없는 캐릭터는 한철 계절이 지나면 시드는 잡초나 다를 바 없는 존재입니다.

<샤를로트>의 캐릭터들이 바로 그 잡초입니다. 성우들이 아무리 분발을 해도 <샤를로트>의 캐릭터에겐 어떤 매력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뿐이면 모르겠습니다. 시청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시추에이션과 손발이 오그라드는 유치한 대사가 분단위로 쏟아져 나오는 후반부에 이르면 차라리 성우들의 출중한 연기마저 원망스러울 지경이니까요.


리벤지 매치 그리고...

<샤를로트>의 각본을 쓴 마에다 준은 과거 <카논>, <에어>, <클라나드> 등 양질의 어드벤처 게임 시나리오를 제작한, 소위 '업계'의 전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P.A.WORKS와 협력해서 쓴 애니메이션 데뷔작 <Angel Beats!(앤젤비츠)>는 뛰어난 판매량을 기록한 것과는 별개로 스토리텔링의 기초조차 잡혀있지 않다는 혹평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5년 뒤 그는 "<앤젤비츠!>를 비웃던 사람들이 찍소리도 못하게 해주겠다"며 다시 돌아왔습니다.

과연 마에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앤젤비츠!>를 보고 <샤를로트>를 본다면 누구라도 말문이 막혔을테니까요.


[평점 : 2/10]

댓글 2개:

  1. 1점은 고문도구로 쓸 정도는 되야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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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추가 1점도 성우 연기 때문에 준거. 그것만 빼면 이미 훌륭한 고문도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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