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8일 목요일

<마션(2015)> 리뷰



한 탐사원의 화성 조난기

가까운 미래, 화성을 탐사하던 NASA의 아레스3 탐사대는 급작스러운 모래폭풍에 휩쓸리고 그 와중에 탐사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행방불명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결국 탐사대는 마크를 화성에 놔둔 채 탈출하고 NASA는 그의 죽음을 공표하는데...

당연하게도 마크는 살아있었다. 허나 그에게 남겨진 건 31일 동안 작동가능한 베이스 캠프와 수주일치 비상식량 뿐...

과연 마크는 화성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압도적인 비주얼, 세밀한 디테일

화성은 어떤 별인가? 푸른 바다와 울창한 녹림이 표면의 대부분을 덮는 생명의 별, 지구와 달리 화성(火星)은 그 이름대로 붉게 타는 색깔의 산화철 먼지가 뒤덮고 있다. 표면적은 지구의 1/4, 부피는 지구의 1/10 밖에 안되는 이 왜소한 행성은 이산화탄소가 대기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산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화성은 죽음의 별이다. 황량한 모래먼지의 사막이다. 영적인 의미에서 지옥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상의 그 누구도 생전에 발을 디디진 못했으니 말이다.

영상미학자로 정평이 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눈에도 화성은 그렇게 비친 듯 하다. <마션>에 등장하는 화성은 분명 죽음이 지배하는 별이다. 타오르는 태양 아래에는 붉은 황야만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지옥. 하지만 그곳은 아름다운 지옥이다. 생명의 흔적조차 없이 깨끗한 무(無)의 공간은 지구의 어느 오지에서 볼 수 있었던가? 스콧 감독이 그려낸 적황빛 양지와 검은 음지가 선명하게 대비되는 배경은 그 '치명적인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 바깥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이 <마션>은 화성밖 우주비행사들의 작업 환경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물론 중력이 지배하는 지상에서 무중력 우주의 모습를 찍어야 하는 딜레마가 몇몇 '티 나는' 장면에서 엿보이지만 <마션>의 세밀함은 감히 <인터스텔라>의 그것과 비견할만하다.

각종 우주복과 탐사 장치를 직접 제작해서 조달한 것은 그렇다 치자. 실제와 같이 작동하는 우주정거장 모형과 행성 탐사기지 세트장은 대작 공상과학 영화이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실존하는 화성 탐사정을 그대로 본딴 소품이 살아 움직이는 장면에까지 이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독하다. 정말로 독하다. 그 치밀함에 전율을 느낀다.

영화의 미술팀과 소품팀, 고증팀에 박수를 보낸다. 스크린 밖에서 가장 빛나던 이들이었다.


흥미로운 설정, 그러나 공식에 충실한 서사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가자. 이 화성판 <로빈슨 크루소>, <캐스트 어웨이>, <그래비티>는 선배들과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시놉시스를 읽고 처음으로 든 생각이다. 극지에서 조난당한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는 고대 신화부터 현대의 재난영화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각색이 이루어진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플롯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기발한 재치와 강인한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

<마션>은 화성이라는 비교적 생소한 장소에서 출발한다. 좋다. 외부의 도움에 거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스스로의 힘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선배들에 비해 <마션>의 마크 와트니에게는 NASA가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다. NASA의 괴짜들이 머리를 맞대고 온갖 기발한 구출계획을 만들어내는 장면에선 소소한 웃음이 나온다. 좋다.

하지만 아쉽다. 마크 와트니의 행보는 선배들이 걸어온 길을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화성은 점점 마크를 죄어갈 것이다. 척박한 기후 앞에 식량, 산소, 전기 그 무엇도 충분하지 않다. 구조계획도 순조롭지만은 않다. 그러나 천운은 분명히 따를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더 큰 위기가 닥칠 것이다. 마크의 운명은 과연? 해답은 영화관에서.


만족과 실망의 공존

재난 영화로서 <마션>은 관객의 기대에 멋지게 부응하는 작품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미술센스는 화성을 <반지의 제왕>의 모르도르와 같이 죽음과 미가 공존하는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세트장과 소품의 뛰어난 디테일에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맷 데이먼은 숨소리와 표정만으로도 화성 한가운데 고립된 인간의 고통을 마치 내 고통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마션>은 분명 대작 재난 영화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달하는 재미가 장르의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 아쉬움이 크다.


[평점 :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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