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4일 수요일

<커뮤터> 리뷰


커뮤터

원제: The Commuter
감독: 자우메 코예트세라


여러분은 리암 니슨이 나치의 마수로부터 유태인을 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리암 니슨이 자신의 딸을 사악한 인신매매 조직으로부터 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리암 니슨이 인천에 빗발치는 북한군의 포화 속에서 한국인을 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리암 니슨은 지하철 통근객을 구출해야 합니다. 탈선해서 엉망진창 폭주하는 영화로부터 말이죠.

커뮤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리암 니슨이 리암 니슨하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역시 2010년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양산형 리암 니슨 영화와 궤를 같이 하는 영화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과거를 뒤로 하고 이제는 평범한 삶을 사는 리암 니슨. 그러나 평온한 나날은 모종의 범죄조직에 의해 사랑하는 이가 인질로 잡히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소중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끔찍한 폭력의 세계에 다시 발을 담글 수밖에 없는 상황. 과연 리암 니슨은 남다른 재주(a special set of skills)를 발휘해서 악의 조직을 소탕하고 사랑하는 이를 구출할 수 있을까요?

시간낭비하지 맙시다. 여러분도 다 아시잖아요.

리암 니슨이 권총을 쥐고 탕탕! 억! 털썩! XX는 어딨어! 탕탕! 펑! 으아! 쿵! XX가 어딨는지 말해! 퍽! 픽! 끼이익! 탕탕! 끄아아악! THE E.N.D.

여러분이 흑백 포스터 정중앙에 고독하게 서 있는 리암 니슨의 핏발 선 주먹을 보고 커뮤터를 그런 영화라고 생각하셨다면, 예. 맞아요. 커뮤터는 그런 영화예요. 다만 이번에 리암 니슨이 싸워야 할 상대는 모종의 이유로 영화 내내 얼굴 한번 비치지 않고 찌질하게 스크린 바깥에서만 지시를 내리는 강력한 사람들(powerful people)입니다. 너무나 강력한 사람들이라고 등장인물들이 귀에 딱지가 앉게 강조하는 통에, 아예 조직 이름이 '강력한 사람들'이 아닐까 착각마저 들 지경이네요.

전직 경찰이었으나 이제는 뉴욕의 평범한 생명보험사 직장인(아이러니!)으로 팍팍하게 살아가던 리암 니슨(60) 씨. 아마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훌륭한 시퀀스인 통근 장면을 찍은 후, 직장에 도착한 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자식 등록금에 허리가 휘는 마당에 저당 잡힌 집마저 내놓아야 할지도 몰라 전전긍긍하던 그에게 의문의 여성이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선금으로 2만 5천 달러를 받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찾아주면 추가로 7만 5천 달러를 주겠다는 겁니다. 리암 니슨은 노후에 대한 불안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안을 덥썩 물지만, 당연히(!) 함정이었습니다. 과연 리암 니슨은 남다른 재주를 발휘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슬슬 궁금하시겠죠? "그래서, 재미는 있냐?"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려는 관객 중 하나였으니까요. 영화는 분명 시종일관 진지한 장면으로 일관했음에도 말입니다.

커뮤터는 리암 니슨의 여타 테이큰 클론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지만 그런 양산형 플롯과는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커뮤터는 철저하게 망가진 액션 영화입니다. 어디까지나 비교적 멀쩡한 초반부를 지나자마자 이 영화는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폭주를 멈추지 않습니다. 우선 리암 니슨을 동네 이웃마냥 서로 알고 있는 지하철 통근객과 기관사(!), 철도 직원들은 애교로 넘어갑시다(일단 세상에서 가장 혼잡하기로 악명높은 뉴욕 지하철이 한산하다는 것부터가 이 영화의 진정한 장르를 드러냅니다). 거기에 리암 니슨이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해도 순순히 들어주는 통근객과 기장의 태도에서, 매일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한국 직장인들은 훈훈한 인정을 느끼리라 확신합니다.

이야기는 후반부 들어 더욱 흥미를 돋웁니다. 고생 끝에 자신이 찾아야 할 사람을 발견한 리암 니슨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집니다. 한, 30초 동안요. 드디어 결단을 내린 리암 니슨. 그런데 열차가 느닷없이 폭발합니다(!). 그리고 온갖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CG의 향연이 펼쳐지고 최악의 대치 상황이 펼쳐지는 와중에 전개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아무 존재감도 없던 세계의 진실도 스리슬쩍 지나가듯 언급됩니다. 예, 저도 관심 없어요. 그보다, 보세요! 흑막의 꼬붕(보스 아님)의 정체가 밝혀졌어요! 놀랍게도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누구나 예상했을 법한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쟈스!

나머지는 뭐, 예상하셨겠죠. 딱 그대로 끝나요.

커뮤터는 잘못 만든 액션 영화가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를 총망라한 영화입니다.  또 영화가 그점을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자신의 치부를 당당히 드러냄으로써, 커뮤터는 어쩌면 리암 니슨 팬 무비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를, 위대한 졸작으로 기억될 여지를 남겼습니다.


[평점: 10/리암 니슨]

<두근두근 문예부!> 리뷰


두근두근 문예부!

원제: Doki Doki Literature Club!
제작: Team Salvato


2017년 가을, 혜성 같이 등장해 유튜브와 트위치 등지에서 일약 스트리밍 붐을 일으킨 한 게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1월 1일, 한글패치가 공개되며 이젠 한국의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유명세를 넓히게 됐죠. 하지만 표지만 보고선 이 게임의 폭발적인 인기가 바로 와닿지는 않습니다. <두근두근(Doki Doki) 문예부!>라는 제목, 아니메풍 히로인 4명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타이틀 디자인은 전형적인 일본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다시 말해, 미연시를 연상케 합니다. 대체 미국의 인디게임 회사가 제작한 일본풍 미연시가 무슨 기묘한 이유로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됐을까요?

아쉽게도 전 이유를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여러분이 게임을 직접 해보시고 이유를 찾으시길 추천합니다. 텍스트 의존도가 절대적인 비주얼 노벨은 본래 스포일러
에 민감한 장르이나, <두근두근 문예부!>는 특히나 그 정도가 매우 큽니다. 이 게임은 마술과도 같습니다. 트릭을 몰라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저는 <두근두근 문예부!>의 내용에 대해 그 어떤 스포일러도 일절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이 포스팅에서는 제 경험과 나름의 논리를 바탕으로 이 마이너 장르 게임이 게이머 커뮤니티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유와, 왜 <두근두근 문예부!>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풀어보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근두근 문예부!>는 훌륭한 비쥬얼 노벨입니다. 물론, 악성 팬덤이 각종 스트리밍 사이트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도배한 낯뜨거운 찬사를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작금의 스트리밍 문화SNS를 떼놓고 이 게임의 진가를 평가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우선 <두근두근 문예부!>의 플롯에 대해 말해보죠. 물론 줄거리를 이야기하려는 건 아닙니다. 일단 스팀 소개 페이지에 따르면, 귀여운 4명의 여자 아이와 알콩달콩한 문예 동아리 활동을 즐기는 게임이라는군요. 하지만 단순히 모에한 그림이나 달달한 분위기만으로 승부를 걸기엔 시장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미연시 본가인 일본이 아니라 미국의 소규모 인디 게임사가 만든 작품(더군다나 프리웨어)이라면 더더욱 상대가 되지 않죠. 그렇다면 남는 건 대중에 크게 어필할 플롯 뿐입니다. 다행히 제작진, Team Salvato는 요즘 관객에게 먹히는 플롯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두근두근 문예부!>는 다분히 남이 내가 플레이하는 걸 보는 상황을 의식하고 만든 게임입니다. 플롯은 교묘하게 계산된 순간에 마찬가지로 교묘하게 연출된 장면을 투척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감정을 충동케 합니다. 한마디로 리액션을 끌어내는 거죠. 이 게임은 여러분의 호의를 철저하게 이용합니다. 플레이어는 미소녀 문예부원과 두근두근한 동아리 활동을 보내는 와중에도 느닫없이 목이 메일 수 있고, 때로는 가슴에 칼날이 파고 들어오는 듯한 서늘한 심정에 몸을 부르르 떨곤 합니다. 하지만 그 리액션 하나하나가 스크린 너머 제2의 시청자들에겐 되려 웃음 포인트가 됩니다. 한마디로 스트리밍에 최적화된 플롯이라는 거죠(심지어 스트리밍을 할 때만 등장하는 깜짝 장면도 있습니다).

다만 아무리 플레이어가 화려한 리액션을 취한다 한들, 리액션에 진정성이 없으면 외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두근두근 문예부!>가 스트리머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플롯이 자연스레 장면에서 의도된 감정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를 활용한 암시와 복선이 돋보입니다. 시는 캐릭터의 복잡한 심상 세계를 표현하는 수단 뿐 아니라 거시적인 세계의 윤곽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며, 전자는 플레이어에게 충동을, 후자는 플레이어에게 감탄을 불러 일으킵니다. 물론 감정의 진폭을 극대화하는 파격적인 연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건 분명하죠. 비단 스트리밍 중이 아니더라도 몇몇 장면에선 스트리머와 비슷한 리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두근두근 문예부!>가 훌륭한 건 미연시라는 장르에 한획을 그은 위대한 작품이어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창적이고 오리지널리티 넘치는 비쥬얼 노벨이어서 그런 것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문예부!>은 기성 장르에 적지 않은 빚을 진 게임입니다. 히로인은 하나 같이 어디서 빼다박은 얼굴이고, 참신하다는 연출도 뜯어보면 먼저 시도한 작품이 없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쪽 계열의 게임을 저보다 깊이 파고 든 분들은 한편의 패러디 총집편을 보는 기분이겠죠. 동감입니다.

그러나 <두근두근 문예부!>만큼 급변한 2010년대 미디어 지형에 효과적으로 안착한 동장르의 게임도 없었습니다. 남이 하는 것을 내가 보고 즐길 수 있는 시대에 <두근두근 문예부!>는 더할 나위없이 안성맞춤입니다. 그보다 뛰어난 게임들은 물론 많지만, 마이너 장르의 요소요소를 알맞은 비율로 적절한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보다 넓은 유저층이 생소한 컨텐츠를 소화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데 이 게임의 진가가 있습니다. 스트리밍을 통해 간접체험할 관객들까지 포섭하여 스스로를 화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저력 역시 마땅히 존중받아야겠지요.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남도 좋아해주길 바라지만, 모든 작품이 그렇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평점: 8/10]

2018년 1월 12일 금요일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 리뷰



[이미지 출처: www.imdb.com]


"하나 말해주죠. 가난은 결코 고결하지 않아요. 난 부자, 가난뱅이로 다 살아봤는데 난 언제나 부자를 선택할 겁니다. 그럼 문제가 생겨도 난 리무진 뒷자석에 앉아 2천 달러짜리 양복 빼입고 4만 달러 금딱지 시계를 찬 채로 나타날 테니까!"

그와 동시에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손목에 차고 있던 4만 달러짜리 금시계를 벗어 던집니다. 뻗쳐오는 수많은 손길을 뚫고 금시계는 어느 운 좋은 직원의 손바닥에 떨어집니다. 조던은 외칩니다. "뺐어! 때려!"

말마따나 가난은 고결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잘 살아보자'는 목표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렇죠. 그렇기에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끊임없이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전에, 대체 부자란 뭘까요? 부자는 무엇을 얼마나 가져야 할까요? 그리고 부자가 되려면 무엇을 얼마나 포기해야 할까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답을 콕 집어주지 않습니다. 대신 한 주식 중개인의 인생역정 속에서 힌트를 언듯 비출 뿐이죠.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신분상승 욕구가 강한 22세의 조던 벨포트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줄 유일한 장소, 월 스트리트를 찾아가 문을 두드립니다. 유서 깊은 증권회사에 취직한 그는 입구를 들어선 순간부터 돈의 향기를 찾아 몰려든 이들의 속살을 보게 됩니다. 주식 중개인란, 계약을 따내 고객의 수수료를 뽑아 먹을 수만 있다면 어떤 허황된 소리든 떠벌리는 것도, 최소한의 품위조차 버리는 것도 허용되는 정글의 동물. 그 틈바귀에서 살아 남으려면? 물정 모르는 조던에게 상사인 헤나(매튜 맥커너히 분)는 아주 실용적인 충고를 합니다. 딸딸이를 자주 쳐서 긴장을 풀고, 코카인을 빨면서 정신을 다잡으라고요.

하지만 뼈를 깎는 고생(?) 끝에 주식 중개인 자격증을 딴 1987년 10월 19일. 얄궂게도 대공황 이후 최대 증시 폭락 사태인 블랙 먼데이가 일어나 조던은 중개인이 된 첫날만에 직장을 잃고 맙니다. 일생의 꿈이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하지만 조던은 곧 새로운 기회를 발견합니다. 수익 가능성이 거의 없어 뭣도 모르는 청소부나 속아서 사는 페니 스톡(penny stock, 개당 주가가 1달러 미만인 장외 고위험 주식)을 자신의 현란한 말발이면 그럴싸하게 포장해 수천, 수만개를 하루 만에 팔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조던은 자신의 화려한 생활에 홀려 직장을 떼려치고 따라 온 아파트 이웃 도니(조나 힐 분)와 배운 것은 없지만 무언가-주로 대마초-를 팔아 본 경험이 풍부한 고향 친구 모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쓰레기 주식을 팔아 돈을 불립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을 등쳐 벌 수 있는 돈엔 한계가 있는 법. 그는 스트랜튼 오크먼트라는 회사를 차리고 이제 부자를 상대로 인생을 건 도박을 합니다.





하지만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관심사는 조던의 가공할 도박이 아닙니다. 아예 영화 캐릭터 조던 본인이 관객을 향해 '너흰 이런 데 관심없잖아?' 익살스럽게 눈웃음을 치기까지 합니다. 카메라는 철저하게 조던의 끝을 모르는 탐욕과 사치, 향락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약, 돈의 위력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위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오름과 동시에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모습이 실 한오라기 걸치지 않은 채로 노출됩니다. 은유적으로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사내에서 직원들이 매춘부와 단체로 난교 파티를 벌이고 섹스 중에 온갖 마약을 흡입하는 장면이 마치 일상의 한 장면처럼 지나가니까요.

아무리 영화라지만 오버한다고요?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잡>은 월 스트리트에 밀집한 대형 투자은행 주식 중개인들의 행태를 낱낱이 고발한 바 있습니다. 이 주식 중개인들은 밤마다 고가의 스포츠카를 대절해 고급 매춘부를 끼고 놀았는데 그때마다 회사 법인카드를 주저없이 긁었죠. 그 돈은 낮에 고객에게 부실 대출 상품을 떠넘겨 번 것이었고요. 월 스트리트의 늑대는 절대 가상의 동물이 아닙니다.





노출은 살갗에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장장 179분동안 이어지는 저질스런 대사의 향연을 듣노라면 정신이 멀쩡할까 싶지만 놀랍게도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이 보이는 순간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벌써 끝이야?"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각본은 3시간의 상영시간을 거짓말인 것처럼 관객을 현혹합니다. 이 마술의 원리는 두 개의 키워드로 압축됩니다. 천박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범죄와 섹스, 마약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세계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각본가 터렌스 윈터는 구태여 그속에서 품위, 교훈 따위를 찾는 똥볼을 차지 않았습니다. 그저 욕망이 따르는대로 썼죠. 그렇게 해서 역사상 FUCK이 가장 많이 쓰인 영화가 탄생했죠. 하지만 그 천박함이 교묘한 리듬에 따라 춤을 추기 때문에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역사상 가장 배꼽 빠지는 블랙 코미디가 될 가능성 역시 갖추게 됐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손에 대본을 쥐어준 건 신의 한수였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상 주인공 조던 벨포트의 원맨쇼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원 맨 아미, 일당백의 노련한 스타 배우 기용에 영화의 흥망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에 "하느님, 저 여자를 어떻게 따 먹죠(God, help me. How do I fuck this girl)?"라는 대사를 이보다 매끄럽게 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요? 마약에 취해 침을 질질 흘리며 온몸으로 계단을 구르다시피 기어 내리는 연기는요? 제 두 눈과 귀는 절대로 없다네요.




조던 벨포트는 일반인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를 거머 쥐었고 마찬가지로 일반인으로선 누릴 수 없는 삶을 살았죠. 여기서 처음 던진 질문들을 약간 바꿔보죠. 그정도면 부자일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사실 그것만이 유일한 답은 아닙니다. 적어도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존했던 인물은 조던 벨포트는 여러분은 생각할 법하지 않은 결론을 내리죠. 그것이 조던의 급격한 상승장과 보다 더 급격한 하락장 모두를 이끈 요인이었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만한 부자가 되려면 뭘 얼마나 포기해야 할까요?

답은 스스로 찾아 보시길. 179분은 충분히 긴 시간이니까요. 혹은, 제 경우엔 좀 짧았던 것 같군요.


[평점: 10/10]

2017년 7월 1일 토요일

<쇼트 피스(2014)> - 짧은 내용, 긴 여운



마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처럼 <쇼트 피스>는 근래 일본의 TV 애니메이션이 다루길 꺼리는 요소로 가득 찬 극장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디자인의 교복을 입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는 존재할 리가 없는 미소녀, 사춘기에 고통받는 남주인공이 내뱉는 손발이 고통스러운 대사, 순수하게 상업적인 이유로 완결되지 않은 작품을 영상화해서 '급전'을 땡긴 후 결말은 시청자들의 상상에 맡기는 제작위원회의 관행에 빳빳한 중지를 날리고 싶었던 걸까요? 2013년에 개봉한 <쇼트 피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득한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과거로 돌아가는 효과적인 방법은 없겠죠.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좋았던 시절로 넘어가기 전에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을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네요.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쇼트 피스> 역시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상업' 영화입니다. 스튜디오부터 '기동전사 건담', '카우보이 비밥' 등 걸출한 상업 애니메이션을 배출한 선라이즈라는 점이 이를 방증합니다. 다만 여기에 최초 상영된 곳이 2012년 프랑스의 안시(Annecy)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였고 이후, 히로시마, 부산 국제 영화제를 거쳐 일본의 25곳의 영화관에 제한 상영되었다는 특이한 이력이 붙습니다. 즉, 출품용 영화였죠. 그러니 두터운 팬층 덕택에 꾸준한 악평 속에서도 매년 꼬박꼬박 나오는 양산형 '라이트' 애니메이션과는 달라야 할 필요가 있었고, 관객도 거부감이 덜했을 거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관객이 작품에 어떤 기대를 했느냐'와 '작품이 관객의 기대를 충족했느냐'는 전혀 별개의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쇼트 피스>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후자의 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쇼트 피스>는 4개의 다른 에피소드를 <쇼트 피스>라는 제목으로 묶은 68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모음입니다. 원제는 'SHORT PEACE(짧은 평화)'이지만, 사실 각 에피소드는 다루는 주제도, 소재도, 런닝 타임도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중의적 효과를 노리지 말고 그냥 'SHORT PIECE(단편)'라는 제목을 붙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각설하고, <쇼트 피스>의 에피소드는 아래와 같습니다.

0. <오프닝 애니메이션>
TV 애니메이션과 비슷하게 <쇼트 피스>도 오프닝 영상과 함께 시작합니다(다행인지 오프닝 곡은 부르지 않습니다). 내용은 도리이(일본 신사 앞에 세워진 거대한 나무 기둥) 밑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소녀가 눈을 감고 수를 세다 눈을 떴더니 웬 별천지로 워프하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소녀는 흰 토끼를 따라갑니다만 다행인지 썬글라스를 쓰고 검은 옷을 입은 괴한과 마주치진 않고 수수께끼의 빛나는 구체에 올라타더니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모습이 변합니다. 그러더니 빛 속에서 <쇼트 피스>라는 타이틀이 나타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참고로 저는 약을 하지 않습니다.

1. <츠쿠모>
배경은 전국시대로 추정되는 중세 일본, 길 잃은 나그네가 어느 사당에서 비를 피하다 이상한 일을 겪게 됩니다. 정교한 3D 그래픽으로 그려진 캐릭터와 배경, 그리고 기기묘묘한 소품들이 인상적으로, 이는 뒤에 올 에피소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인물 작화의 경우, 움직임이 다소 뻣뻣한 것만 빼면 평면 그림과 차이를 알아채기 힘들어 제작진의 정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주제 자체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자"는 소박한 스케일이어서, 아까 빛나는 구체를 탄 소녀가 이후 세계의 진실을 알고 쿵푸 마스터로 각성하진 않았는지가 더 신경쓰이더군요.

2. <불의 요진>
배경은 임진왜란 이후로 추정되는 중세 일본의 에도(도쿄), 마츠키치와 목소리가 묘하게 하야미 사오리를 닮은 와카는 담 하나를 마주하고 사는 소꿉친구입니다. 부족할 것 없이 자란 두 사람이지만, 불을 좋아하는 마츠키치는 가업을 팽개치고 남의 집 불구경만 하다 결국 아버지로부터 의절당하고 양갓집 규수로 길러진 하야미 사오리, 아니, 와카는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될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작풍이 매우 독창적인 에피소드입니다. 마치 한폭의 전통 민속화처럼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부감법으로 그려졌고,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색채와 3D 작화의 강점인 풍부한 질감이 어우러져 단지 전통의 재현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사족으로, 하야미 사오리와 마 모씨는 끝내 소꿉친구 커플에 너무나 어울리는 결말을 맞게 됩니다. 그저 마이클 베이가 오르가즘을 느낄 엔딩이라고만 해두죠.

3. <GAMBO>
슬슬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배경은 '또' 전국시대로 추정되는 중세 일본. 코카콜라 로고가 언제라도 눈앞에 어릴 것만 같이 새하얀 백곰이 무사와 결투를 벌입니다...만 일방적으로 무사를 떡실신시키더니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무사에게 자비를 베풉니다. 그리고 별안간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집니다. 한편 가까운 마을, 마을 사람들이 피부가 붉은 정체불명의 괴물을 치료하다 정신을 차린 괴물의 습격을 받아 사상자를 내고 처녀 한명이 납치당합니다. 전통 민담과 SF적 소재를 적절하게 섞은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특히 괴물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은 보시기에 따라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거대 괴물들이 서로 피가 튀고 뼈가 부숴져라 싸우는 모습도 볼거리입니다.

4. <무기여 잘 있거라>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헤밍웨이의 동명의 소설에서 빌려온 제목을 가진 이 에피소드는 제목과는 정반대로 런닝 타임 내내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마지막 5분이 되어서야 관객이 제목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구성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훌륭한 에피소드이기도 하죠. 이야기는, 놀랍게도, 근미래의 일본에서 시작합니다. 모종의 이유로 후지산은 분화하고 도쿄 인근 지역은 대충 망한 뒤 사막과 흉폭한 로봇이 지배하는 죽음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런 황야를 질주하는 장갑차. 그 안에는 제각기 "이번 일이 끝나면 무슨 일을 하며 살거냐" 따위의 흉흉한 악담을 서로에게 내뱉는 일군의 용병들이 타고 있습니다. 이들은 폐허가 된 도쿄에서 미사일 탄두를 찾아내야 합니다. 살인 로봇과의 전투는 덤입니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용병들이 입고 있는 전투복입니다. 묘하게 우주복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에, 무슨 원리로 작동하는지 알 수 없는 장치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놀랍게도 이 장치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20분을 살짝 넘는 런닝 타임동안 화면은 전투복에 박혀 있는 거의 모든 장치들이, 여전히 미스테리한 원리로, 작동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여줍니다. 꼼꼼하게 계산된 액션씬의 각본 덕분에 가능했죠. 흡사 할리우드의 그것에도 밀리지 않는 스릴감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자랑인 디테일, 어느 쪽도 놓치지 않고 잡아낸 이 액션씬이 아니었다면 결말부에 울려 퍼지는 노래에 전율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럼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죠. <쇼트 피스>는 관객의 기대를 충족하는 작품일까요? 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언급했듯이, <쇼트 피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과거로 돌아가는 애니메이션입니다. 과감하게 교복입은 미소녀가 대세가 되기 까마득히 이전으로 회귀해서 멀리서는 일본의 전통설화, 가까이서는 90년대 유행한 세기말 SF가 지녔던 예스러움을 세련된 기술로 되살렸죠. 마치 세기를 넘나드는 리메이크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요? 무엇보다 이 작품의 3D 그래픽은 제작된지 5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경이롭습니다. 하지만, 예스러움과 촌스러움은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 장담컨대 여러분은 동화로든, 소설로든, 영화로든 비슷한 이야기를 변형된 형태로(혹은 똑같은 형태로) 이미 수십번은 들어봤을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새부대엔 새술이 담겨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은 기대를 배신할 가능성이 높아요.

다만, 오래 묵힌 추억이 있다면 그 짙은 냄새가 반가울지도요.


[평점: 7/10]

* 다만 마지막 에피소드인 <무기여 잘 있거라>에는 8점을 주고 싶습니다. 비록 주제는 상투적이었지만 분량의 한계가 있었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제 기준으로 거의 완벽했어요. 감히 이 에피소드 하나만으로, <쇼트 피스>는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말하겠습니다.

2015년 10월 15일 목요일

국정 교과서 논란 2탄 - 레이디 가카의 큰 그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대해 짤막한 변을 남긴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간 뉴스, 블로그, SNS에서 쉴새없이 쏟아져 나온 온갖 격앙된 반응을 보고 있자니 엊그제가 아주 먼 옛날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결국 우리 정부는 예상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기어코 한국사를 '국사'로 되돌리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한국의 사학계는 발칵 뒤집혔고 교수들은 집단으로 항의성명을 내고 국정 교과서 집필거부 움직임을 보이는 등 사태는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재 10월 15일 기준, 공식적으로 국정 교과서 집필을 거부한 교수의 수는 이미 천여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중 대부분이 오늘 하루 사이에 모였다는 점이 경이롭다. 여느 학자가 그렇듯이 사학자들 역시 남의 연구성과를 물어뜯는데 도가 튼, '파이터' 기질 충만한 이들 아니던가. 그랬던 그들이 하루만에 고대사, 중세사, 근현대사 등 전공분야를 막론하고 하나의 기치 아래 운집하는 기적을 목도하니 국민통합을 추구하는 레이디 가카의 큰 그림에 경탄을 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대붕의 뜻을 모르고 지껄이는 참새 무리가 많아 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오늘 인터넷에서 본 글들만 해도 그렇다. 한 역사학자가 말하길, "훌륭한 지도자는 역사를 바꾸고 저열한 지도자는 역사책을 바꾼다"고 한다. 무지의 소치가 따로 없다. 레이디 가카는 역사책을 바꿈으로써 역사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역사가 레이디 가카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레이디 가카와 그 가족사는 최소한 임기를 마치는 1년 동안은 교과서에 남아 수많은 이들에게 큰 웃음, 빅재미를 선사하고 마지막엔 어느 쓰레기 처리장 한켠에서 따뜻한 온실가스로 화하여 조용히 생을 마감할 것이다. 실용적인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레이디 가카의 가족사가 대폭 증편된 교과서는 그 두툼한 무게로 컵라면 뚜껑을 묵직하게 누를 것이며 냄비 받침판으로도 그 효용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혜택을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공짜로 누린다고 생각을 해보라! 학생들이 쥐꼬리만한 용돈을 누름판과 받침판 사는 데 낭비할 일이 없으니 천문학적인 돈까지 아낄 수 있다. 그렇다! 레이디 가카께서는 역사를 창조함으로써 마침내 경제마저 창조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계신 것이다.




14일, 새누리당의 유력 대선후보로 꼽히는 김무성 대표는 국회에서 "학부모들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는 식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아이들 머리속에 어떤 것이 들어가서 자리잡을지에는 관심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작금의 역사 교육 행태에 우려를 표했다. 일각에서는 이 발언을 야당의 무상급식 정책을 비꼬면서 동시에 김무성 대표 본인의 편협한 역사관을 드러내는 몰상식한 발언이라며 비판했지만 이 역시 옹졸한 인간들의 아우성에 불과하다. 멀쩡한 서울 시장 한명의 정치인생을 사단낸 무상급식 이슈를 김 대표 같이 노회한 정객이 이제와서 뜬금없이 꺼내들리가 없지 않은가. 그보다는 10년 전 레이디 가카께서 사학법 개정을 저지하신 덕분에 고등학교 학생들의 급식비를 마음껏 횡령할 수 있었던 서울의 한 사학재단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김 대표가 학부모들의 교육에 신경 쓰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억하자. 새누리당은 게임 셧다운제로 한국의 학생들을 게임의 사악한 마수로부터 구해냈고 창작물 속 청소년을 성폭행한 범죄자를 실제 성폭행범보다 더 높은 형량으로 응징하는 아청법을 통과시킨 혁신적인 정당이 아니던가. 그런 당의 대표가 아이들의 교육을 걱정하지 않을리 있겠는가.




새누리당이 같은 날 길거리에 내건 플래카드는 더욱 아프게 의표를 찌른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비단 학생들뿐이랴.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한국의 근현대사 역시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복선은 교과서 곳곳에 교묘하게 숨어있다. 가령 한국 전쟁 이후, 우리의 국부 이승만 대통령이 종국에 독재자로 매도되는 모습은 보천보 전투로 영웅이 된 김일성이 인류 최악의 독재자로 전락하는 모습과 기묘한 중주를 이룬다. 5.16 군사 혁명이라는 구국의 결단 끝에 경무대로 영전한 박정희 대통령은 어떤가?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아들 김정일에게 자리를 물려주려고 대규모 숙청이라는 '구국의 결단'을 내린 김일성을 겹쳐보고 있지는 않았나? 1972년 남북간 접촉이 성사된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시대를 열고 동시에 김일성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를 강화한 대목에선 운명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흉탄 두발에 서거하는 부분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죄책감은 커녕 쾌감을 느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적화(赤化)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이제 우리는 진실을 안다. 우리는 북한이 구축한 매트릭스, 아니 북트릭스 속에서 생각이 거세된 채 하루하루를 똥만드는 기계로 살아온 것이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주자! 환한 웃음을 주자! 따뜻한 불쏘시개를 주자!

<미들어스: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Middle-earth : Shadow of Mordor, 2014)> 리뷰




예, 알아요. 버튼만 누르면 자동적으로 콤보가 이어지는 전투는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에서, 벽과 지붕을 자유로이 오르내리는 조작 방식은 <어쌔신 크리드>에서, 그리고 온갖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적들을 몰래 제압하는 시스템은 양쪽 모두에서 배낀 거라는 사실쯤은요. 근데 어쩌겠어요. 끝내주게 재밌는걸!


타산지석

<미들어스: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이하 '미들어스')>는 그리 독창적인 게임은 아닙니다. 초반부 튜토리얼만 봐도 이 게임이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도 <미들어스>는 훌륭한 선배들을 롤모델로 삼았고 그들의 성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모범생 후배였습니다.


<미들어스>는 액션 게임입니다. 그리고 2010년대 가장 성공한 두 액션 게임 프랜차이즈의 유산을 그대로 가져왔죠. 바로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의 프리플로우 컴뱃(free-flow combat) 시스템과 <어쌔신 크리드>의 파쿠르 조작(parcours movement) 시스템입니다.




프리플로우 컴뱃은 다수의 적을 상대로 플레이어가 물 흐르듯 부드러운 전투를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에서는 플레이어가 공격 버튼을 연타하면 조작 캐릭터는 화려한 움직임으로 적을 공격, 콤보를 올리고 그렇게 일정수의 콤보가 누적되면 플레이어는 강력한 특수 기술을 사용해 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콤보는 도중에 적의 공격을 받으면 중단되기 때문에 위험할 땐 반격과 회피를 해야만 합니다. 또 몇몇 적은 특정한 기술로만 공격할 수 있으므로 적당한 순간에 적당한 기술을 섞는 순발력도 중요하죠.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버튼을 눌러 흐름을 이어야 한다는 점은 흡사 리듬 게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파쿠르(parcours)란 원래 프랑스어로 '길'을 뜻하는데 오늘날에는 둔턱이나 벽, 철봉 같은 장애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목적지까지 빠르게 도달하는 스포츠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군중으로 가득찬 도심 속에서 목표를 암살해야 하는 <어쌔신 크리드>의 주인공은 높다란 건물과 외줄, 비좁은 난간 위에서 파쿠르를 선보이는데 조작 방식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플레이어는 그저 '달리기' 버튼을 누른 채 장애물에 돌진하면 됩니다. 앞에 벽이 있나요? 벽으로 달려가세요! 지붕과 지붕 사이를 건너고 싶다고요? 그냥 달려요! 그러면 캐릭터가 알아서 벽을 타고 지붕을 넘어줄 겁니다. 고작 버튼 하나만으로요. 그럼 플레이어는 적당한 곳에 숨어 적을 어떻게 덮칠지 생각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미들어스>의 개발사, 모노리스(Monolith)는 두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전투에서 빠르게 콤보를 이으려면 탁 트인 벌판에 때릴 수 있는 적들의 수가 충분히 많아야 합니다. 반대로 잠입과 암살은 적들이 군데군데 분산되어 있는 가운데 모습을 감출 수 있는 다양한 지형지물과 장치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두 시스템을 모두 도입하려면 밸런스 문제까지 대두됩니다. 전투가 지나치게 쉬우면 플레이어가 귀찮게 숨어다닐 이유가 없고 은신의 이점이 전투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면 아무도 정공법을 택하지 않을 테니까요. 참 골치아픈 딜레마입니다.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다.

모노리스가 내놓은 해법은 단순했지만 무척 정교한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오픈 월드에 거대한 평야, 복잡한 구조의 요새, 몸을 숨길 수 있는 수풀과 각종 구조물들을 모두 망라한 것입니다. 그리고 적들은 기본적으로는 무리를 지어 기습에 대비하게 하되 시야가 닿지 않는 건물 지붕과 난간 등지에는 적의 궁수를 한명씩만 배치함으로써 잠입을 용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걸로 플레이어들에게 선택권이 생겼음은 물론, 프리플로우 컴뱃과 파쿠르 조작의 이점까지 모두 챙길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뿐이었다면 <미들어스>는 '그나마 괜찮은' 아류작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겁니다. <미들어스>는 타인의 성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기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먼저 <미들어스>에선 활을 이용하여 상상을 초월한 온갖 플레이를 펼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멀리서 적을 소리 없이 죽이는 건 기본이요, 칼싸움 중에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레골라스마냥(!) 활로 적을 공격해 콤보를 쌓는 것은 물론, 도망치는 적의 발을 쏴 멈추게 하거나 심지어는 멀리 떨어진 적에게 자기자신을 쏘아보내서(?!) 기습할 수도 있습니다. 또 활로 적을 조준하면 플레이어의 '포커스(focus)' 게이지가 소모되며 시간이 느려지는데 덕분에 플레이어는 정확하게 적의 원하는 부위-아마도 대부분 머리-를 노릴 수 있습니다.




적들을 몰래 해치우는 방법도 여러가지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은신 자세를 취한 채 접근하여 적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배후나 위아래-에서 단검으로 '쓱싹'하거나 멀리서 활로 저격하는 것이지만 주변의 오브젝트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거나 특수한 스킬을 사용하면 보다 재미난 상황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목표가 무리 한가운데 있다면 근처에 매달린 파리집을 떨어뜨려 적들을 흩어놓는 게 좋습니다. 아니면 제가 선호하는 '주변의 맹수를 유인해서 무리 전체를 밥으로 던져주기' 작전도 있습니다. 파리도, 맹수도 없다면 적의 음료에 독을 타서 무리에 내분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적을 세뇌하는 기술을 배웠다면 아예 군대를 만들어 상대를 쓸어버리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액션 게임에서 정치하기, 네메시스 시스템.

<미들어스>는 기존의 시스템을 개량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제작사 모노리스는 <미들어스>에 네메시스 시스템(nemesis system)을 도입하여 다른 아류작들과 확실히 선을 그었습니다. <미들어스>의 적들은 모두 계급이 있습니다. 계급은 일반병-대장-베테랑 대장-엘리트 대장-족장 순으로 올라가는데 무수히 많은 일반병들과 달리 대장급 이상의 적들은 최상위 계급, 족장 5명과 휘하 15명의 대장까지 총 20명뿐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능력치는 일반병들을 크게 웃돌며 저마다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대장은 일반 공격이 먹히지 않고 어떤 대장은 싸움에서 절대 후퇴하지 않으며 어떤 대장은 무시무시한 한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대장급 적들은 약점 역시 가지고 있기에 정보만 있다면 이들을 공략할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작중에 정보를 알고 있는 적이나 죄수를 심문하거나 곳곳에서 발견되는 기밀 문서를 읽으면 원하는 대장의 특성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들어스>의 대장들은 단순한 경험치 셔틀이 아닙니다. 20명의 대장들은 비열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라 출세를 위해서라면 동족의 등에 칼을 꽂는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비슷한 계급끼리 더 높은 직위를 두고 다투는 건 예사이고 최상위 계급조차 항상 부하의 배신에 노출되어 있죠. 플레이어들은 네메시스 시스템 속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암투에 개입하여 전황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습니다. 혼자 상대하기 껄끄러웠던 대장을 다른 대장의 손으로 해치운다거나 내가 세뇌시킨 대장을 족장의 자리에 앉히는 일따위로 말이죠. 하지만 네메시스는 항상 당신의 편이 아닙니다. 플레이어가 대장의 손에 죽는다면 그 대장은 더 높은 레벨과 계급을 얻게 되어 다음 전투에서 곤욕을 치르게 될 겁니다. 심지어 플레이어를 죽인 일반병조차 승진을 합니다. <미들어스>의 세계에서 죽음은 의미가 있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그대로 옮기다. 단, 스토리 빼고.

이제 조금 불편한 부분으로 넘어가보죠. 게임의 스토리입니다. <미들어스>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미들어스>의 배경은 <반지의 제왕>의 세계, 구체적으로는 가운데땅(Middle-earth)입니다. 악의 군주, 사우론은 인간과 엘프 연합군에 의해 쓰러진 이후 암암리에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결국 모르도르의 잔존 오크들을 규합해 곤도르 왕국을 공격합니다. 이 때 곤도르를 지키던 파수꾼 탈리온은 사우론의 수하인 검은 손, 검은 탑, 검은 방패에게 눈 앞에서 가족을 잃는 치욕을 당하고 자신도 목숨을 잃을 뻔하나 순간 고대 엘프의 영혼이 자신에게 빙의한 덕분에 죽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엘프는 탈리온에게 가족의 복수를 도와주는 대가로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줄 것을 요구하고 탈리온은 이에 응하면서 <미들어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톨키니스트가 아닌 입장에서 <미들어스>가 얼마나 소설 <반지의 제왕>에 충실했는지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지만 보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영화 <반지의 제왕>이 게임에 남긴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들어스>의 세계는 영화의 축소판입니다. 북적거리는 요새와 쇠락한 고대 유적, 흉측하지만 친숙한 오크들의 모습은 영화와 판박이입니다. 게임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들조차 그 외견과 행동이 영화판의 등장인물들과 비교해도 위화감이 들지 않습니다. 영화판에 한정한다면 <미들어스>는 <반지의 제왕>의 '분위기'를 충실히 구현한 작품입니다.


유감스러운 부분은 이 게임이 <반지의 제왕>의 '드라마'를 한편의 몰개성한 복수극으로 퇴화시켰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인 탈리온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굴곡도 없이 복수만을 향해 전진할 뿐입니다. 간달프의 재치도, 아라곤의 근엄함도, 보로미르의 고뇌도 이 3류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에게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반지의 제왕> 캐릭터들조차 플롯 장치로만 사용되고 금세 퇴장하는 지경에 이르면 실소가 나옵니다.


<미들어스>의 심심한 미션 구성과 연출 역시 이야기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들입니다. 탄탄한 기본기와 뛰어난 자유도를 갖춘 액션 게임답지 않게 메인 미션과 서브 미션은 일방적인 잠입/암살/전투의 지리한 반복이라 어떤 사건이 펼쳐져도 별 인상이 남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한창 흥미진진한 가운데 갑자기 컷신이 나와 맥을 끊어대는 구시대적 연출도 문제입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컷신의 주인공에 어느 플레이어가 일체감을 느낄까요?


그리고 위 문제가 총집합한 마지막 미션 최종전투는 <미들어스> 최악의 오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잦은 컷씬, 뜬금없는 반전, 허무한 클라이막스 그리고 의미없는 결말까지... 앞서 지적한 모든 결점을 단 5분 남짓한 순간에 농축시킨, 핵폐기급 엔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게임팬으로서 

하지만 <반지의 제왕>이 아닌 게임팬으로서 <미들어스>는 분명 완성된 작품입니다.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의 유려한 전투와 <어쌔신 크리드>의 파쿠르를 제대로 소화해내어 '검증된' 재미를 보장한 것은 물론, <미들어스> AI의 정점인 네메시스 시스템을 도입하여 게임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입니다. 비록 <미들어스>는 외전으로서 커다란 누를 남겼지만 게임으로선 커다란 성공을 남겼습니다.




[평점 : 8/10]

2015년 10월 10일 토요일

시간을 달리는 한국사, 국정 교과서의 귀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 2015년 10월 7일, 드디어 새누리당은 한국사 교과서를 기존의 검정체제에서 국가가 발행하는 단일 교과서로 전환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말이 '잠정'이고 아직 대통령의 결정이 남아있다지만 사실상 밀어붙이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아직 최종 결정된 것은 없으면 단일 교과서로 갈지, 검정강화로 갈지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아직 확정된 사안이 아님을 강조했다. 물론 이는 표정관리에 불과했다. '잠정' 결정이 이루어진지 고작 이틀 뒤인 10월 9일,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일보와의 통화를 통해 내년 10월까지 새 국정 교과서의 집필과 심의를 완료할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 깨알 같이 "검인정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는 사족이 붙었지만 아무리 눈치없는 독자 제현이라도 이 말의 의미'없음'에 대해선 굳이 해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사 국정화의 역사는 길다. 1972년 10월 17일, 유신체제를 통해 영도적 대통령 체제를 구축한 박정희 대통령은 종래의 11종이었던 역사 교과서를 하나로 통폐합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에 따라 1974년 1학기부터 유신 체제를 옹호하고 반공을 국시로 삼으며 정권의 경제정책을 홍보하는 내용이 골자가 된 '국사' 교과서가 문교부에서 발간되기 시작했다. 1982년, 이번에는 군사 반란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5공화국을 미화하고 각지의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는 내용을 추가하여 교과서를 개정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군사 정권의 왜곡은 대부분 시정되었으나 참여정부를 지날 때까지 국사 교과서는 여전히 교육부에서 발행되었다. 2010년이 되어서야 중학교 국사가 검정 체제로 전환되었고 2011년엔 드디어 고등학교 한국사마저 그 뒤를 따랐다. 이로써 '국사'는 무려 37년이 지난 끝에서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랬어야만 했다.




헤겔은 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마르크스는 덧붙였다. "첫번째는 희극으로, 두번째는 비극으로." 2013년, 한 출판사에서 집필한 한국사 고등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해서 세간이 들썩일 때만 하더라도 상황은 싸구려 희극처럼 보였다.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겠다고 장담하던 교과서는 실로 가관이었다. 신뢰도가 의심스러워 대학교 학부생조차 꺼리는 출처를 통해 자료를 당당히 긁어모은 건 예사요, 이미 확인된 사실 관계마저 틀린 부분이 수백 군데나 드러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교육부가 출판사에 재수정을 요구했으나 그러고도 남은 오류가 수십 군데에 달했다니 그 심각성을 알만 하다. 그럼에도 한국사 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고 굳는 사람들은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고 출판사를 옹호했다. 결국 이 희대의 교과서는 심연 속에 묻히기는 커녕 논란의 중심에 서서 한동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호사를 누렸고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채택을 포기하는 와중에 기어코 한 고등학교의 간택을 받는 기염까지 토하고 만다. 참고로 학교의 이사장이 대통령 각하의 동생분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다.




그러나 2년 전의 희극이 오늘의 비극을 알리는 전주곡이었음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실 교과서의 무오성을 성경의 그것만큼이나 신봉했던 이들은 이내 새로운 희생양을 찾았다. 얄궂게도 교과서 검정 제도였다. 그들이 숭앙하던 교과서를 처음 세상에 선보였던 바로 그 법말이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었고 고전 비극의 막이 올랐다. 이제 비극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려하고 있다. 학교가 교과서를 선택했던 검인정 체제와 달리 국정 교과서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만약 2013년의 희극이 국사편찬위원회가 2017년에 편찬할 '국사'에서 재발한다면 전국의 학생들이 저질 코미디의 관객이 되는 것이다.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인가! 승자인 지금 역사를 하루 빨리 남기고 싶은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누구나 세탁하고 싶은 '흑역사'는 하나쯤 가지고 있는 법이고 존경하는 아버지의 과오를 인정하기 싫은 자식의 효성이란 것도 있다. 하지만 승리는 영원하지 않다. 배후에 계신 대통령 가카나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님은 돌이켜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아버님께서 '지금' 어떻게 기억되고 계신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