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2일 금요일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 리뷰



[이미지 출처: www.imdb.com]


"하나 말해주죠. 가난은 결코 고결하지 않아요. 난 부자, 가난뱅이로 다 살아봤는데 난 언제나 부자를 선택할 겁니다. 그럼 문제가 생겨도 난 리무진 뒷자석에 앉아 2천 달러짜리 양복 빼입고 4만 달러 금딱지 시계를 찬 채로 나타날 테니까!"

그와 동시에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손목에 차고 있던 4만 달러짜리 금시계를 벗어 던집니다. 뻗쳐오는 수많은 손길을 뚫고 금시계는 어느 운 좋은 직원의 손바닥에 떨어집니다. 조던은 외칩니다. "뺐어! 때려!"

말마따나 가난은 고결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잘 살아보자'는 목표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렇죠. 그렇기에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끊임없이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전에, 대체 부자란 뭘까요? 부자는 무엇을 얼마나 가져야 할까요? 그리고 부자가 되려면 무엇을 얼마나 포기해야 할까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답을 콕 집어주지 않습니다. 대신 한 주식 중개인의 인생역정 속에서 힌트를 언듯 비출 뿐이죠.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신분상승 욕구가 강한 22세의 조던 벨포트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줄 유일한 장소, 월 스트리트를 찾아가 문을 두드립니다. 유서 깊은 증권회사에 취직한 그는 입구를 들어선 순간부터 돈의 향기를 찾아 몰려든 이들의 속살을 보게 됩니다. 주식 중개인란, 계약을 따내 고객의 수수료를 뽑아 먹을 수만 있다면 어떤 허황된 소리든 떠벌리는 것도, 최소한의 품위조차 버리는 것도 허용되는 정글의 동물. 그 틈바귀에서 살아 남으려면? 물정 모르는 조던에게 상사인 헤나(매튜 맥커너히 분)는 아주 실용적인 충고를 합니다. 딸딸이를 자주 쳐서 긴장을 풀고, 코카인을 빨면서 정신을 다잡으라고요.

하지만 뼈를 깎는 고생(?) 끝에 주식 중개인 자격증을 딴 1987년 10월 19일. 얄궂게도 대공황 이후 최대 증시 폭락 사태인 블랙 먼데이가 일어나 조던은 중개인이 된 첫날만에 직장을 잃고 맙니다. 일생의 꿈이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하지만 조던은 곧 새로운 기회를 발견합니다. 수익 가능성이 거의 없어 뭣도 모르는 청소부나 속아서 사는 페니 스톡(penny stock, 개당 주가가 1달러 미만인 장외 고위험 주식)을 자신의 현란한 말발이면 그럴싸하게 포장해 수천, 수만개를 하루 만에 팔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조던은 자신의 화려한 생활에 홀려 직장을 떼려치고 따라 온 아파트 이웃 도니(조나 힐 분)와 배운 것은 없지만 무언가-주로 대마초-를 팔아 본 경험이 풍부한 고향 친구 모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쓰레기 주식을 팔아 돈을 불립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을 등쳐 벌 수 있는 돈엔 한계가 있는 법. 그는 스트랜튼 오크먼트라는 회사를 차리고 이제 부자를 상대로 인생을 건 도박을 합니다.





하지만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관심사는 조던의 가공할 도박이 아닙니다. 아예 영화 캐릭터 조던 본인이 관객을 향해 '너흰 이런 데 관심없잖아?' 익살스럽게 눈웃음을 치기까지 합니다. 카메라는 철저하게 조던의 끝을 모르는 탐욕과 사치, 향락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약, 돈의 위력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위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오름과 동시에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모습이 실 한오라기 걸치지 않은 채로 노출됩니다. 은유적으로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사내에서 직원들이 매춘부와 단체로 난교 파티를 벌이고 섹스 중에 온갖 마약을 흡입하는 장면이 마치 일상의 한 장면처럼 지나가니까요.

아무리 영화라지만 오버한다고요?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잡>은 월 스트리트에 밀집한 대형 투자은행 주식 중개인들의 행태를 낱낱이 고발한 바 있습니다. 이 주식 중개인들은 밤마다 고가의 스포츠카를 대절해 고급 매춘부를 끼고 놀았는데 그때마다 회사 법인카드를 주저없이 긁었죠. 그 돈은 낮에 고객에게 부실 대출 상품을 떠넘겨 번 것이었고요. 월 스트리트의 늑대는 절대 가상의 동물이 아닙니다.





노출은 살갗에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장장 179분동안 이어지는 저질스런 대사의 향연을 듣노라면 정신이 멀쩡할까 싶지만 놀랍게도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이 보이는 순간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벌써 끝이야?"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각본은 3시간의 상영시간을 거짓말인 것처럼 관객을 현혹합니다. 이 마술의 원리는 두 개의 키워드로 압축됩니다. 천박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범죄와 섹스, 마약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세계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각본가 터렌스 윈터는 구태여 그속에서 품위, 교훈 따위를 찾는 똥볼을 차지 않았습니다. 그저 욕망이 따르는대로 썼죠. 그렇게 해서 역사상 FUCK이 가장 많이 쓰인 영화가 탄생했죠. 하지만 그 천박함이 교묘한 리듬에 따라 춤을 추기 때문에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역사상 가장 배꼽 빠지는 블랙 코미디가 될 가능성 역시 갖추게 됐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손에 대본을 쥐어준 건 신의 한수였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상 주인공 조던 벨포트의 원맨쇼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원 맨 아미, 일당백의 노련한 스타 배우 기용에 영화의 흥망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에 "하느님, 저 여자를 어떻게 따 먹죠(God, help me. How do I fuck this girl)?"라는 대사를 이보다 매끄럽게 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요? 마약에 취해 침을 질질 흘리며 온몸으로 계단을 구르다시피 기어 내리는 연기는요? 제 두 눈과 귀는 절대로 없다네요.




조던 벨포트는 일반인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를 거머 쥐었고 마찬가지로 일반인으로선 누릴 수 없는 삶을 살았죠. 여기서 처음 던진 질문들을 약간 바꿔보죠. 그정도면 부자일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사실 그것만이 유일한 답은 아닙니다. 적어도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존했던 인물은 조던 벨포트는 여러분은 생각할 법하지 않은 결론을 내리죠. 그것이 조던의 급격한 상승장과 보다 더 급격한 하락장 모두를 이끈 요인이었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만한 부자가 되려면 뭘 얼마나 포기해야 할까요?

답은 스스로 찾아 보시길. 179분은 충분히 긴 시간이니까요. 혹은, 제 경우엔 좀 짧았던 것 같군요.


[평점: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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