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4일 수요일

<커뮤터> 리뷰


커뮤터

원제: The Commuter
감독: 자우메 코예트세라


여러분은 리암 니슨이 나치의 마수로부터 유태인을 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리암 니슨이 자신의 딸을 사악한 인신매매 조직으로부터 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리암 니슨이 인천에 빗발치는 북한군의 포화 속에서 한국인을 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리암 니슨은 지하철 통근객을 구출해야 합니다. 탈선해서 엉망진창 폭주하는 영화로부터 말이죠.

커뮤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리암 니슨이 리암 니슨하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역시 2010년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양산형 리암 니슨 영화와 궤를 같이 하는 영화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과거를 뒤로 하고 이제는 평범한 삶을 사는 리암 니슨. 그러나 평온한 나날은 모종의 범죄조직에 의해 사랑하는 이가 인질로 잡히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소중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끔찍한 폭력의 세계에 다시 발을 담글 수밖에 없는 상황. 과연 리암 니슨은 남다른 재주(a special set of skills)를 발휘해서 악의 조직을 소탕하고 사랑하는 이를 구출할 수 있을까요?

시간낭비하지 맙시다. 여러분도 다 아시잖아요.

리암 니슨이 권총을 쥐고 탕탕! 억! 털썩! XX는 어딨어! 탕탕! 펑! 으아! 쿵! XX가 어딨는지 말해! 퍽! 픽! 끼이익! 탕탕! 끄아아악! THE E.N.D.

여러분이 흑백 포스터 정중앙에 고독하게 서 있는 리암 니슨의 핏발 선 주먹을 보고 커뮤터를 그런 영화라고 생각하셨다면, 예. 맞아요. 커뮤터는 그런 영화예요. 다만 이번에 리암 니슨이 싸워야 할 상대는 모종의 이유로 영화 내내 얼굴 한번 비치지 않고 찌질하게 스크린 바깥에서만 지시를 내리는 강력한 사람들(powerful people)입니다. 너무나 강력한 사람들이라고 등장인물들이 귀에 딱지가 앉게 강조하는 통에, 아예 조직 이름이 '강력한 사람들'이 아닐까 착각마저 들 지경이네요.

전직 경찰이었으나 이제는 뉴욕의 평범한 생명보험사 직장인(아이러니!)으로 팍팍하게 살아가던 리암 니슨(60) 씨. 아마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훌륭한 시퀀스인 통근 장면을 찍은 후, 직장에 도착한 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자식 등록금에 허리가 휘는 마당에 저당 잡힌 집마저 내놓아야 할지도 몰라 전전긍긍하던 그에게 의문의 여성이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선금으로 2만 5천 달러를 받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찾아주면 추가로 7만 5천 달러를 주겠다는 겁니다. 리암 니슨은 노후에 대한 불안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안을 덥썩 물지만, 당연히(!) 함정이었습니다. 과연 리암 니슨은 남다른 재주를 발휘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슬슬 궁금하시겠죠? "그래서, 재미는 있냐?"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려는 관객 중 하나였으니까요. 영화는 분명 시종일관 진지한 장면으로 일관했음에도 말입니다.

커뮤터는 리암 니슨의 여타 테이큰 클론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지만 그런 양산형 플롯과는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커뮤터는 철저하게 망가진 액션 영화입니다. 어디까지나 비교적 멀쩡한 초반부를 지나자마자 이 영화는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폭주를 멈추지 않습니다. 우선 리암 니슨을 동네 이웃마냥 서로 알고 있는 지하철 통근객과 기관사(!), 철도 직원들은 애교로 넘어갑시다(일단 세상에서 가장 혼잡하기로 악명높은 뉴욕 지하철이 한산하다는 것부터가 이 영화의 진정한 장르를 드러냅니다). 거기에 리암 니슨이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해도 순순히 들어주는 통근객과 기장의 태도에서, 매일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한국 직장인들은 훈훈한 인정을 느끼리라 확신합니다.

이야기는 후반부 들어 더욱 흥미를 돋웁니다. 고생 끝에 자신이 찾아야 할 사람을 발견한 리암 니슨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집니다. 한, 30초 동안요. 드디어 결단을 내린 리암 니슨. 그런데 열차가 느닷없이 폭발합니다(!). 그리고 온갖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CG의 향연이 펼쳐지고 최악의 대치 상황이 펼쳐지는 와중에 전개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아무 존재감도 없던 세계의 진실도 스리슬쩍 지나가듯 언급됩니다. 예, 저도 관심 없어요. 그보다, 보세요! 흑막의 꼬붕(보스 아님)의 정체가 밝혀졌어요! 놀랍게도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누구나 예상했을 법한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쟈스!

나머지는 뭐, 예상하셨겠죠. 딱 그대로 끝나요.

커뮤터는 잘못 만든 액션 영화가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를 총망라한 영화입니다.  또 영화가 그점을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자신의 치부를 당당히 드러냄으로써, 커뮤터는 어쩌면 리암 니슨 팬 무비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를, 위대한 졸작으로 기억될 여지를 남겼습니다.


[평점: 10/리암 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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